<47개월 17일째> 흐리고 비

퇴근이 늦어져 애들한테 못가겠다고 전화하고 나니 애들 외삼촌이 전화를 했다.
마침 병원매점에 와 있다면서 같이 들어가자고.
애들이 눈에 아른거려 함께 퇴근했더니 두녀석이 나를 반긴다.
사랑한다며 보고 싶었다며 나를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어휴. 내가 이 맛에 산다니까.

저녁식사를 마치니 명훈이가 공부하자며 책을 들고 와 앉는다.
월요일엔 국어선생님, 화요일엔 수학선생님이 오시는데, 화요일엔 명훈이가 낮잠을 자 책만 놓고 가셨었나 보다. 월요일날 남은거랑 화요일 책이랑 오늘 낮에 다 해 버렸다면서 또 공부를?
일단 눈사람 만들기를 하기로 했다.
"엄마, 눈사람은 밖에서도 만들수 있고 이렇게 종이로도 만들수 있어!"하며 녀석이 책에서 눈사람 종이접기를 열심히 오려낸다.
할머니랑 여러가지를 만들어 보았다더니 오리는 것부터 접는 솜씨까지 예사롭지 않다.
쓱쓱하더니 금세 눈사람하나를 뚝딱!
"엄마, 여기다 풀칠을 해서 스케치북에 붙이는 거야!"하더니 스케치북을 펼친다.
"와~ 정말 예쁜 것들이 많~네. 이거 다 명훈이가 한거야! 와 정말 잘했다!"
그동안 제법 많은 것들을 잘도 만들어 붙여 놓았다.
기특한지고..

"엄마, 이제 만들기 다 했으니까 덧셈뺄셈 할까?"
"명훈아, 너 오늘 공부 많이많이 했다며. 그러니까 이제 그만하자. 응?"
"으아~앙. 할~머~니, 나 공부 더 할꺼야. 으아~앙"
그만하잔 말에 금세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할머니한테 달려간다.
"어머나, 뭔 애가 저래. 공부를 더 한다고 우네! 그래 더하자 더해. 울지말고."
녀석, 고래고래 울다가 공부 더 하란 소리 떨어지기 무섭게 달려와 연필을 붙잡고 엎드린다.

"엄마, 이건 손가락을 몇개나 펼쳐야 해?"
"응, 13 더하기 1 이니까. 미현아, 미현이 손가락 좀 다 펴 볼래?"
미현이 손가락까지 동원해 덧셈놀이를 시작했다.
미현인 오빠가 숫자를 센후 책에 적으면 잘했다고 열심히 박수를 쳐댄다.
맞는지 틀리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오빠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 미현이도 이쁘고, 무엇이든 열심인 명훈이도 이쁘고.
그치만 명훈아, 너무 많이 해서 질려버리면 어쩌려구.
우리 천천히 조금씩 하는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