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6월 6일이면 우리 가족은 아빠 고향(귀래) 뒷동산으로 산딸기를 따러 간다.  보훈가족인 할머님도 올핸 현충행사에 참여치 않으시고 가족행사에 가기로 하셨다.

  아침 일찍 출발하신 애들 서울 고모님이 차가 밀려 12시가 다 되어 도착을 하셨다. 7인승 맨뒷좌석에 앉았던 미현인 갈증이 난다며 우유를 벌컥벌컥 마신다.
그러더니 목적지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멀미가 났는지 토를 해 버린다.
차에다 그러지 않아 천만 다행이다.
명훈아빠와 미현이가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느라 모래를 퍼다 나르는 동안 미현인 언제 그랬냐는둥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컨디션이 좋아 보인다.

  일찍 도착하신 충주, 제천, 인천 고모님은 어느새 통 하나씩 빠알간 산딸기를 가득 따 놓으셨다.
고향 이웃분댁의 잔디밭에서 준비한 삼겹살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했다. 이번에도 큰어머님과 고모님들이 과일이며 반찬, 고기를 준비를 해 오셨다.
우리는 매번 몸만 와서 너무 죄송하고 감사하기만 하다.

식사를 마치고 빈통을 하나씩 챙겨 아빠가 어렸을 적 가 보았다던 뒷동산을 올랐다. 
여기저기 빨갛고 탐스런 산딸기가 주렁주렁.
처음엔 어떻게 따야 하는지 모르겠다던 명훈이와 미현이가 아주 재미나게 산딸기를 딴다.
가시에도 찔리고 엉덩방아도 찧어가며....
그래도 즐거운 추억을 쌓는다.
오염되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작은 곤충들도 많이 날고....

  잠시 뒤, 서울 고모님이 혜린이 민지와 함께 우리 뒤를 따라 올라 오신다.
나를 보고는 아마 나 혼자 아이들과 온 줄 아셨나보다.
명훈아빠를 보더니 '어떻게 나보다 더 내 고향산을 더 잘 아나~했다'며  하하 웃으신다.
여기저기 풀벌레와 곤충들 때문에 민지는 이내 산을 내려가 버렸다.
어느새 산딸기로 반쯤 차 있는 그릇들.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어린시절, 아빠랑 서울고모님이 딸기를 따러 자주 갔다던 그곳으로...
작년에 공사중이던 아빠의 집터는 어느새 도로가 나 있었다.  도로를 타고 잠시 걷자 커다랗고 긴 나무가 있는 작은 계곡 쪽으로 빨간 산딸기가 널려있다. 가까이 가니 정말 산딸기 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곳에서 가져 간 딸기통을 커다란 산딸기로 가득 채울 수 있었다.
명훈인 신이 나서 산딸기를 따는데 미현인 피곤하고 지루해지기 시작한 듯 보였다.
'언제 갈 거냐며, 도대체 얼마나 더 딸 거냐며....' 투덜투덜. 금세 통이 차고 이제 그만 돌아가기로 했다.
잠시 동안에 가져간 통 가득가득 산딸기를 채워오자 모두들 놀라신다.

  애들 고모부님들과 큰아버님이 오디를 따시겠다며 다시 산을 오르고 우린 남기로 했다.
명훈인 서울고모께 무슨 말을 전하겠다며 달려가더니 아마도 따라 나선 듯 보였다.
한참 뒤, 머리를 감은 듯 땀에 흠뻑 젓은 명훈이가 웃으며 달려온다.
고모따라 갔다가 기운만 쓰고 왔대나~~~
오디는 하나도 보이지 않더란다. 그래서 그냥 내려왔다며.

  남은 음식을 정리하려다 다시 식사시간이 되어버렸다.
가져온 음식을 모두 먹고 가자고 하신다.
다시 불판에 고기가 올려지고 생각없다던 식구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맛있게 식사를 한다.
처음 보는 노오란 수박이 어찌나 맛있던지.
식사를 하고 있자니 오디를 따러 갔던 식구들이 내려온다.
명훈아빠가 따 온 산딸기통을 보이며 인천고모께 자랑을 하자 인천고모는 믿기지 않는다며 당신이 따다 놓은신 것을 확인하신다.
그리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그리 많이 딸 수 있냐며.... 의심을?  하하하
통 하나가득 남은 충주고모님댁 맛있는 김치는 우리가 가져가기로 했다.

우리 가족을 위해 하루 농사일도 제쳐 두신 고마운 고향 이웃분들.
그래서 고향이 좋고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집에 돌아와 따 온 산딸기를 명훈이와 한참을 맛있게 먹었다.
너무 많아 명훈아빠가 이웃들 나눠준다며 조금 남기고 가지고 나가신다.
따는 즐거움, 먹는 즐거움 그리고 나누는 즐거움.
오늘 하루, 피곤했지만 즐겁고 행복한 추억이 가득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