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월 29일째> 흐림

미현이가 어제 목욕을 시키지 않은 탓에 자기 머리를 쥐어 뜯으며 아침부터 투정을 부려댄다. "그래, 머리감겨 줄께!"하며 미현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섰다.
대야를 준비하고 수돗물을 틀었는데 어쩐일인지 물이 나오질 않는다.
비가 정신없이 쏟아붓더니 수돗물 공급하는데 문제가 생겼나보다.
'조금있으면 나오겠지'하며 기다리는데 너무 답답하다.
알아보니 12시정도면 물이 나올거란다. 그런데 3시가 되도록 우리집은 물이 나오질 않는다.
애들 밥도 먹이지 못하고 안되겠다 싶어 애들 큰댁엘 가기로 했다.
명훈이랑 아빠를 기다리며 옥수수를 몇게 땄다.
"명훈아, 우리 물 나오면 옥수수 삶아 먹자!"
"안돼, 이 옥수수는 큰 엄마 갖다 드릴거야!"
엊그제 큰엄마께 옥수수를 따다 안기더니 또 큰엄마 갖다 드린단다.

명륜동 큰댁에 도착하니 할머니와 주희누나가 우릴 맞는다.
미현인 잠시 낯설어 하는 듯 하더니 금새 뛰어다니며 신나 한다.
게다가 마당한켠에 있는 강아지에 관심이 있어 하며 계속 강아지만 보러 가잔다.
할머니께 미현일 맡기고 난 명훈이 점심을 챙겨 먹이기로 했다.
명훈인 잡곡을 싫어한다.
그런데 밥통을 여니 '빨간밥!', 어쩔수 없이 메뉴는 라면!
그사이 할머닌 미현일 업고 근처 시장구경을 가셨다가 금새 다시 들어오신다.
미현이가 찡찡거리며 집으로 가자고 자꾸 손가락으로 가르키더란다.

"할머니, 미현이랑 어디 갔다 오셨어요?"
"응, 시장에~!"
"에이, 나도 시장에 가고 싶은데~!"
"그럼, 같이 갔다 올래?"
할머니의 말씀이 끝나기도 전에 '예!'하며 벌써 신발을 신고 있다.
할머니와 손자가 재밌게 시장구경을 하고 오나 했더니만, 조금 있으려니 명훈이가 웃음섞인 목소리로 헐떡거리며 들어온다.
"명훈아, 할머닌 어디 계셔?"
"응, 내가 저기 시장에 놓고 왔는데!"
"뭐라고?"
명훈이 말을 듣고 계시던 큰아빠와 큰엄마가 그냥 웃으실밖에.
녀석, 할머니가 뭐 물건이라도 되나 놓고 오게.
잠시 뒤, 웬 녀석이 그렇게 빨리 달리냐고, 쫒아오느라 혼이 났다고 하시며 할머님이 숨이 차서 들어오신다.

미현인 따뜻한 물에 벅벅 긁어대던 머리도 감고 시원하게 목욕도 했다.
그래서일까? 기분이 몹시 좋은지 하하거리며 큰아빠한테 씨익 웃어주기도 하고 재롱을 떤다. 집에 가면 물이 나와야 저녁을 해 먹을텐데. 나올까?

집에 돌아왔지만 10시가 다 되어가도록 물은 아직 나오질 않는다.
다행히 뒷집에 지하수가 나온다기에 조금 떠나 설겆이하고 젖병도 삶았다.
설마, 내일아침엔 나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