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 11일(수) 맑음

몸이 힘들어 집에 들어와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에 진통이 오는 듯 하다.
30여분 간격으로 약한 진통이다. 준비하고 일단 명훈이 병실로 갔다.
계속해서 가진통이 있다. 11시가 되어서 시간을 체크하니 5분간격이다.
12시쯤 되자 3~4분 간격!

어머니와 엄마는 빨리 분만실로 가라고 난리시다.
너무 일찍 갔다가는 다시 올라와야 할 것 같아 조금 더 있은 후 12시 30분쯤 분만실로 내려갔다. 어머님은 걱정이 되신다고 따라오셨다.
체중을 달고, NST(태아계측검사), 초음파를 하고 나니 한시간쯤 흘렀다.

그리고 내진을 해 본 선생님이 열렸단다.
관장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으니 5분만 참으란다.
관장을 끝내고, 양수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너무 아프다.
심호흡과 함께 힘주기를 여러번, 아침과 점심 먹은 것이 거의 없다보니 힘주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아기 머리가 보인단다.

분만대로 옮겨졌다. 드디어 마지막 힘든 순간, 선생님과의 호흡맞추기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십여분, 온몸과 머리까지 땀과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다.

아주 힘든 어느 순간!
'선생님! 도와 주세요, 도저히 못하겠어요!'하는데 아주 묵직한 것이 울컥 빠져나온다.
'응애!응애!' 아가의 울음소리!
'아가, 너 미워!'란 소리가 먼저 나와 버렸다.
명훈일 나을때보다도 몇배는 더 힘든 시간이었다.

오후 2시 55분 3.15kg의 건강한 여아!

아가의 이물질을 제거하고 아가와의 첫대면이 있었다.
내볼에 아가의 볼을 대었다. '아! 이 부드러움! 그리고 행복!'
'아가야, 너 너무 이쁘구나! 수고했어!' 한참을 그렇게 아가와 마주했다.
명훈이 태어나 처음 보았을때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

'아가야,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이렇게 건강하고 이쁘게 만나게 되어 너무 행복하고 기쁘단다. 사랑해!

절개부위가 꿰매지고 태반을 한번 더 밀어냈다.
분만대에서 내려와 회복실로 왔다.
이제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에 피곤함이 밀려왔다.
명훈아빠, 여주형님, 어머님이 먼저 수고했다며 격려를 해 주신다.
명훈이와 같은 병실에 있으로 병실을 알아 보았지만 환자가 많아 병실이 없단다.
할 수 없이 내가 명훈이 옆병실로 들었다.
그래야 엄마가 잠시 오가며 나를 봐 줄 수 있을테니까...
오늘은 명훈아빠가 옆에서 자기로 했다.
분만 4시간이 되어서도 소변이 나오지 않아 소변줄로 뽑아내야 했다.
양도 장난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