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개월 06일째> 흐리고 비

미현인 퇴근한 나보다 내가 들고온 보따리가 더 반가운 모양이다.
녀석들의 감기약, 귤한봉지 그리고 녀석들이 먹을 군것질꺼리랑 떡이랑 빼고 나니 정작 아빠를 위한 찬거린 별로 없네.
이틀에 한번 시장을 보아도 사다보면 두 녀석들을 위한 것으로 한가득.
물가는 어찌나 하늘 서운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는지 별로 산것도 없는데 몇만원이다.
엄마가 집에만 있다간 녀석들 과자한봉지 사기도 겁나겠는걸.

저녁식사를 하려는데 명훈아빠의 전화다.
아는 사람들과 식사약속이 있으니 기다리란다.
"엄마, 난 오늘 여기서 잘거야!"라며 포부도 당당하게 말하던 명훈이 녀석!
"명훈아, 아빠가 호~랑이 고기 사준다는데?"
"정말? 그럼 나 엄마아빠 따라 갈거야!'
금새 맘이 바뀌어서는 잠바입고 벌써 나서려한다.
오빠가 설치니 미현이까지 옷걸이로 달려가 자기 잠바를 잡아당기는 바람에 옷걸이가 넘어가서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미현이 녀석, 자기도 놀랐는지 눈만 멀뚱멀뚱!
할머니한테 허리굽혀 인사를 하고 아빠차로 쭐래쭐래.
두녀석 모두 감기약 금새 먹고, 따뜻한 차 안에 있다보니 아직 한참 가야하는데 꾸벅꾸벅 졸고 있다.

약속장소에 도착해 풀어놓자 언제 잠을 잤냐는 표정으로 여기저기 설치고 다닌다.
다른 아저씨들 싫어한다고 눈총을 아무리주어도 막무가내.
단골집이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미안해서 혼날을 것 같다.
미현인 고기한절음 집어 먹더니 주인 아줌마 뒤만 졸졸졸 쫓아다닌다.
사탕하나 얻어먹더니 잠시뒤 미현이가 그 사탕통을 넘보아 바닥에 죄다 쏟아놓고는 주워담느라 정신이 없다.

명훈인 내게 귀속말로 "엄마, 콜라가 먹고 싶은데..."라더니 정작 먹기엔 관심없고, 오프너로 콜라병을 따 보고 싶은거다.
먹지도 않으면서 하나도 아닌 두병씩이나 따 놓았다.
정신없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려니 미현이가 주인아주머니한테 코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해 엄마의 미안한 맘을 조금은 만회해준다.
바깥에 나와서도 손흔들어 빠이빠이까지...

집앞 골목길을 들어서자 두 녀석이 내 손을 뿌리치고 달려간다.
비가와 땅이 젖어 넘어질까 걱정되는데 달리기는 어찌나 잘 하는지...
겨우 손을 붙잡아 대문앞에 서니 바람이 제법 쌀쌀하고 세차다.
내일아침엔 정말 추워지겠네.
쉽게 잠들것 같지 않던 녀석들이 식당에서 너무 정신없이 뛰어 놀은 탓인지 우유한병씩 먹고는 코까지 골아대고 있다.
명훈인 자기베개 끌어안고, 미현인 자기가 엄마인듯 이 엄마를 끌어안고...
둘 다 예쁜꿈꾸고 잘자렴...
사~랑~해!